한겨레> 큐레이터 조선령의 상상공장_ 전혀 다른 세계


한겨레> 큐레이터 조선령의 상상공장_ 전혀 다른 세계



히치콕의 <사이코>를 언급하지 않더라도, 공포영화에는 욕실이 자주 나온다. 가장 안전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의식의 무장이 해제되는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. 이 작품에서 욕조는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떠오르고 있으며, 수도꼭지는 허공에 고정된 알 수 없는 도구처럼 보인다. 깊이나 원근감이 없는 푸른색은 욕조와 수도꼭지를 단일한 종류의 사물로 만들고 배경에 흡수시켜 버리려는 것처럼 보인다. 아니 반대로, 푸른색의 형체 없는 세계가 먼저 있고 그것이 욕조와 수도꼭지를 일시적으로 만들어낸 것 같다. 최지영의 작품이 공포영화의 어떤 순간을 닮았다면,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가 사실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의 지점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.


조선령 백남준 아트센터 학예팀장
http://www.hani.co.kr/arti/opinion/column/367240.html